top of page

오채현 개인전 Chaehyun Oh Solo Exhibition 
«카메라 뒤에 사람 있어요 There's someone behind the camera»

2022. 10. 11 - 10. 30

벌거벗은 극장, 피리 부는 연출가

극장 안에서 통용되는 여러 약속이 있다. 배우는 스포트라이트 밖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원칙부터, ‘무대에 오르기 전 검은 고양이를 보거나 리허설을 망치면 공연이 성공한다’, ‘개막 직전까지는 마지막 대사를 입 밖에 내뱉으면 안 된다’, 그리고 ‘휘파람을 불지 말라’ 등의 각종 미신까지[1]. 예부터 휘파람은 배의 돛을 올리고 내릴 때 선원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신호였다. 이에 착안하여 밧줄로 백스테이지의 무대 장치를 조절하던 시절의 극장에서는 휘파람으로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휘파람은 오로지 배와 극장 안의 노동자 사이에서만 유효한 믿음이었다.

퍼포먼스 <뒤집어진 인사>를 통해 오채현 작가만의 ‘휘파람’으로 관객을 맞이하며 전시를 열기로 한다. 관객은 작가의 등에 영사되는 영상에 시선을 고정하며 전시장으로 이동한다. 실재하는 홍제동 거리 풍경을 뒤로 하고, 기록으로 남은 지난날의 홍제동 풍경에 시선을 뺏긴 채 첫 번째 신(scene)이 내린다. 이어지는 전시장 내부에서는 특정 입 모양과 제스처가 모니터 안에서 반복된다. 이 영상을 통해 연상되는 특정 ‘소리’를 화면의 프레임으로부터 떼 내어 같은 공간의 벽에 글자로 가득 메웠다. 이곳은 음성에서 글자로 대체된 기호를 통해서도 휘파람 소리를 감각하게 하는 오채현의 극장이다. 여기서 객석은 배우로부터 등을 돌리고, 조명은 무대가 아닌 객석을 향해 있다. 배우는 스포트라이트 바깥에서만 춤을 추며, 카메라 프레임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윤곽을 더듬는다. 전시 «카메라 뒤에 사람 있어요»는 이와 같이 극장의 약속을 온통 뒤집어 놓았다. 그러자 오히려 약속을 규정짓는 극장의 실체가 또렷이 드러난다. 이 설정은 배우, 카메라, 무대가 각각 내포하는 범주를 생각하게 한다. 적어도 이 극장에서는 기존의 기호로 감상하는 것을 보류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배우의 몸짓과 무대 연출을 볼 수 있다. 극장의 아우라를 잡아주고 배우와 관객의 행동양식을 범주화하는 무대라는 공간에 빗대어, 오채현이 갖가지 프레임 너머에 대해 갖는 호기심의 궤적을 찾아보자.

먼저, 일련의 지역 예술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매체성을 고민했던 경험[2]을 말할 수 있다. 대게 지역성을 담보로 하는 예술은 지역의 특징을 보기 좋게 가공하거나, 지역 내 네트워킹을 창조해야 하는 암묵적인 의무를 지닌다. 지역 문예 진흥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작품들 속의 지역은 서로 비슷한 언어를 공유하며 정형화 되곤 하는데, 오채현은 이러한 지역 예술의 한계를 의식하며 지역성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역과 국경의 경계가 해체된 오늘날 지역성은 어떤 의미를 지니며 개인의 정체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정리가 덜 된 지역의 크고 작은 갈등, 아직 단어로 정형화되지 않은 갖가지 풍경 등을 날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예술의 역할이 아닐까. 여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노동의 수고로움에 주목하는 작업이 있었다. 오채현은 노동의 물리적인 결과보다는 그것을 채워가는 사람들, 그렇게 시간을 꿰고 여백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행위에 주목했다. 기계자수를 두는 행위, 자수를 인두로 하나씩 녹여 오리는 행위가 지나고 남는 원단으로 설치 작업을 하고[3], 멈춘 자수 공장에 옛 영광 속 활발한 공장 가동 장면을 스크리닝[4]하는 등 노동의 여백을 시각화하며 그것의 경외심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오채현은 기존의 약속과 모뉴먼트에서 그 상징성을 휘발시키고 남은 것과 이를 다시 채우는 행위를 조명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여백을 보게 하기 위해 작가는 더욱더 여러 겹의 프레임을 덧입히는 방식을 취한다. 특정 장소를 재현하고 의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선으로 그곳의 갖가지 프레임을 실시간으로 감각하게 함으로써, 장소를 낯설게 지각하는 행위에 무게를 싣는다. 우리는 지금 글로벌화를 뒤로하고 팬데믹을 통해 다시금 발 묶여 구분 지어진 경계를 경험하고 있다. 거주할 땅(earth)은 어디이며 누구와 그곳을 공유하고, 어떤 태도로 서 있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는[5] 시대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전시 «카메라 뒤에 사람 있어요»는 작가와 배우, 그리고 관객의 동선과 호흡이 전시 장소에 서로 영향을 미칠 때의 감각을 관찰하게끔 설계되었다. 들리거나 보이지 않더라도 인식되는 것을 통해 전시 속 조각난 채로 존재하는 갖가지 프레임을 마주하며, 이 안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믿어야 하며 또 믿고 싶어 하는 것인지 생각해보자.

 

[1] “무대 위에선 휘파람 불지 마세요”, 중앙선데이, https://www.joongang.co.kr/article/3305040 (2008년 9월 20일)

[2] 프로젝트 <나의 살던 고향은>(2020)에서 같은 이야기가 영상과 공연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발휘되는 지점을 비교하였고, 동일 프로젝트의 2022년 버전에서는 특정 지역 출신이 아닌 배우가 그 지역에 대한 향수를 연기하는 페이크 다큐를 연출하였다. <우리는 이곳을 옮기기로 했다_수택 극장 여자>(2022)는 운영을 멈춘 수택동의 극장에서 다뤘을 법한 이야기를 그 지역의 재개발 지대에 겹쳐 필름 에세이 형식으로 재기록했다.

[3] 오채현, <가화만사성>(2020)

[4] 오채현, <10만번의 펀칭>(2019)

[5] 브뤼노 라투르,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박범순 역, 이음, 2021, p.28.

함께 만든 사람들 

작가: 오채현

기획: 장리환

서문/비평: 김유빈(고양문화예술팀 큐레이터)

영상퍼포머: 오지은, 김일환

텍스트 퍼포밍: 윤지희(독립기획)

오프닝 스크리너: 최정원

사진촬영: 백승현

인터뷰촬영: 오채현, 윤지희(독립기획)

포스터디자인:  서안나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