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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환 개인전 Younghwan Kwon Solo Exhibition
«노 패스 No-Path»

Open Window 2022. 11. 07 - 12. 01 

Open Door 2022. 12. 02 - 12. 28

래빗앤타이거는 올해의 가을과 겨울 프로젝트로 권영환 작가의 첫 개인전 <노 패스 NO-Path>를 진행합니다.

전시의 제목 <NO-Path>는 '길 없음', '경로 이탈', '정해진 루트가 아닌' 등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작가는 2019년 자기 작품 사진을 구글 이미지 검색에 넣어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를 검색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이때 작업 키워드를 텍스트 기반의 AI 프로그램에 입력하고 검색된 결과의 텍스트 안에 No-Path라는 단어를 발견하였습니다.

베를린에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그는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설치, 영상, 오브제, 드로잉 등의 다양한 매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자기신체를 매개로 하여 한계에 다다르기, 임계점을 통과하는 상황, 이동과 거리, 안과 밖에 대한 관심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의 작품에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습니다.

권영환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형태가 없는 땀과 냄새부터 일상적 사물인 데오드란트, 측정기, 줄자, 수성페인트, 볼펜, 풍선, 다리미, 책상, 경고문구, 씹다 버린 껌과 우편함 등 매우 다양한데, 세계와 불화하는 신체의 반응에서 촉발된 작가의 관심은 자기 신체와 그것을 둘러싼 공간을 넘어 의문투성이인 세계를 대변하는 사물과 현상에 대한 탐구로 이어집니다.

이번 전시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오픈 윈도 OPEN WINDOW> 2022년 11월 7일 - 12월 1일

<오픈 윈도> 기간 동안 관객들은 쇼윈도와 sns를 통해 이번 전시를 위한 작가의 생각들, 즉흥적이거나 이미 계획된 구상이 어떤 외형을 획득해 가는지 지켜볼 수 있습니다. 전시 공간은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는 상태에서 작가가 바깥에서 들고 온 단서와 사유의 흔적들로 채워지고 또 흩어집니다. 의외의 재료와 결과물이 추가되고 다시 변형되거나 폐기되어 사라지기도 하면서 시간 속에서 유기적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작가는 지역과 공간에서 탐색자-설계자로서 행위하게 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작업의 진행 상황과 재료 수집 과정, 메모 등이 사진과 영상으로 인스타 페이지와 쇼윈도를 통해 공유되고, 관객들은 작가가만들어가고 있는 작업 세계를 유추해 볼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 <오픈 도어 OPEN DOOR> 2022년 12월 2일 - 12월 28일

 

<오픈 도어> 기간에는 관객의 전시장 출입이 가능해집니다. 전시장을 채운 작업과 부산물은 지속해서 변화하며 유동적인 형태로 관객을 맞이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일상 속 레이더망에 포착된 문제를 다각도로 탐구하며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확장과 변주를 반복하는 작가와 그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작업 하나하나를 완결된 작품으로써 분리하지 않고, 행위들과 그 과정에서 남겨진 잔해들이 함께 엉겨 붙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때, 그의 작업 세계의 세밀한 흥미로움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땀 냄새 분사 장치*

백승현(시각예술가/래빗앤타이거갤러리 디렉터)


권영환 작가는 카셀도큐멘타가 열리던 2012년 독일을 방문하고 유 학을 결심하는데, 당시 서른이라는 나이에 처음 타본 비행기는 이듬 해 그를 작가로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 베를린의 란즈베르거 알레 (Landsberger Allee)에 내려놓는다. 이번 전시는 그가 그동안 주변인으로 현대미술의 내부를 관찰해오다가 그 실체를 뜯어 보기로 결심한 뒤 보여주는 첫 번째 개인전이자, 란즈베르거 알레 아뜰리에의 활동에서부터 지금 서문이 쓰여지고 있는 이 순간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루어진 그의 작업-짓고 창작하고 일하는(살아남는)-행위를 조망해보기 위한 입체적이고 유동적인 포트폴리오이다. 2014년 부터 시작되는 그의 작업 포트폴리오에서 이번 전시의 기획이 이루어졌기에 독일 체류(2013-2020) 시기의 그의 작업은 현재 전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시 <NO-Path>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단서로, 그가 어떻게 현대미술이라는 보트에 오르려 하는지, 무엇을 들고 그 보트에 오르고 어느 방향으로 조타해 나갈지, 여정의 향방을 보여준다.

귀국 후 작업실을 마련한 그는 ‘공회전’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곳에서 열심히 공회전하겠다는 의미인데, 그에게 공회전은 일종의 실패이며, 실패를 예측하는 계획이나 준비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유학 초 기 작업 <땀, 2014>에서 그는 3시간 동안 열심히, 그것도 그가 생각 하는 가장 지루하고 의미 없는 운동기구인 훌라후프를 돌리면서 작가는 공회전 돌리는 사람이라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데, 이 작업으로 작가는 학생 시절 화가가 되고 싶다는 말에 반대하며 어머니가 가장 많이 했던 말 “사람이 땀을 흘려 일해야지”에 대해 한참 늦은 회신을 한다. 이 작업은 이후 2017년 브라운슈바익 시내의 경치 좋은 언덕 위에 실내 자전거 운동기구를 가져다 놓고 그것을 타며 땀을 흘리는 영상작업으로 이어진다. 땀을 흘리는 데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으로 “아무 의미 없는 무용한 행위”를 내세우며 예술 행위에 내재한 무의미함이나 생산성 없음을 실토한다.

신체는 세계와 작가를 대면하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신체는 자기가 속한 세계와 불화하면서 동시에 세계를 인식하는데, 세계와 불화하는 신체의 반응에서 촉발된 작가의 관 심은 자기 신체와 그것을 둘러싼 공간을 넘어 의문투성이인 세계를 대변하는 가지각색의 사물과 현상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캔버스 위의 자화상이 거울과 대면하여, 혹은 거울과 불화하여 세계에 나온 분화된 자아이거나 부산물이라면, 권영환 작가의 작업은 자기 신체 가 세계를 구성하는 공간과 위치, 거리와 간격, 일상의 사물들과 불 화하여 나온 또 다른 자아 혹은 부산물이다.

그가 유학 중에 겪었을 식은땀 나는 상황들을 연상하게 만드는 2015 년과 2017년에 제작한 <땀 냄새 분사 장치> 작업에서 그는 자기의 땀을 향수병에 모아 2015년 당시 생계를 담당하던 이베이에 올려 판 매를 시도한다. 미술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떠난 독일 유학에서 살아남는 법을 더 많이 깨닫게 되었다는 그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데, 작가는 낯선 세계와 신체가 대립하여 나온 무의미한 부산물인 땀을 유의미로 포장된 세계를 향해 분사한다.

유의미로 과대 포장되었거나 무의미를 숨겨온 세계에서 작가는 오랜 기간 물건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일을 해왔다. 해체와 조립은 생계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이런 과정은 작가의 작업과도 많이 닮았다. 겉을 뒤집어 안으로 만들거나(안은 동시에 겉이 되고), 여러 한계상황을 가정하고 그 한계를 직접 체험해 보면서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관찰한다. 그는 일상의 틈새에 끼어있는 쉽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구멍이나 흔적, 주방 싱크대의 크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보폭처럼, 크고 작은 의문들을 끄집어내서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여기서 해체는 다시 조립하기 위한 해체이며 재조립의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건 해체의 순서를 역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행 과정은 기존의 시스템에서 대상에 의미가 부여된 연유 를 뒤집어 보는 과정과 유사한데, 작가는 객관화되지 못하고 합당한 사유를 획득하지 못한 무용한 부산물과 행위를 예술이라 명명하고 세계의 시스템 안에 끼워넣기를 시도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작업실과 전시장을 오가고 머물면서 지역 과 공간에서 탐색자-설계자로서 행위하고, '오픈 윈도' 기간 동안 예 상치 못한 피드백을 위한 ‘덫 놓기’를 구상하였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덫 놓기’는 작업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인데 (수단이면서 목적인), 기존에 경험해 보지 못한 피드백을 기대하면서 다분이 의도적으로 매우 주관적이고 치밀한 덫 놓기를 설계한다. 일종의 가정과 상상에서 출발하는 그의 작업은 종종 계획과 진행 과정, 완결된 상태가 명확한 구분 없이 제시되는데, 작가는 이 생각의 덩어리를 하나의 유기적인 작업의 상태로 인식한다.

이 글은 권영환 작가가 전시장에 체류하며 작업을 구상하는 기간에 쓰였기에 그가 새로 발견하고 분해해 보았을 것들에 대한 충분한 관 찰과 사유가 모두 담겨있지 못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 글이 가지는 이러한 한계와 제한된 단서로 인해 관객이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 더 많은 상상과 감흥이 일어나겠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단서가 공개되 기 전에 그가 어떤 덫을 놓고 어느 지점에 닻을 내리는지, 혹은 어디 론가 떠나는 길에 무엇을 데려가고, 무엇을 만나는지, 어쩌면 그보다 앞서 항해의 출발을 알리는 버튼을 과연 어떻게 누를 것인지, 그의 첫 개인전 <NO-Path>에서 두꺼워진 외투안으로 작가가 은근슬쩍 끼워 넣는 무언가를 발견하길 기대한다.


*'땀 냄새 분사 장치'는 2015년과 2017년에 제작한 작품 제목이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작가: 권영환

기획: 김령문

서문/ 비평: 백승현

촬영: 백승현

포스터디자인:  장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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