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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한나 개인전 «신자연부유록the new nature f-log»

2023.04.27 - 05.14

무기력하지만 유쾌하게 부유하기

 

디지털 기술은 홍한나의 지난 작업들에서부터 지속되어 온 주요 관심사다. 그는 디지털 기술을

불안정한 현실에 대한 피로, 강박 그리고 무력감을 대변해 주는 시각적 도구로 다뤄왔다. 멀티탭의

전선들은 마구잡이로 뒤엉켜 무용한 순환만 반복되거나,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기 위해 작성된 코딩은

오류를 통보 받는 등 디지털 기술은 작가의 내적 갈등을 투영할 불투명한 덩어리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신자연부유록 the new nature f-log»에서 디지털 기술은 다르게 드러난다. 그것은 단순히

작가의 내면을 대신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시각 매체를 넘어, 작가 자신에게 공기, 물, 햇빛, 바람처럼

투명하고 자연스럽게 포개어진다. 다시 말해서 디지털 기술은 작가 자신을 구성하는 하나의 자연이

된다. 따라서 «신자연부유록the new nature f-log»에서 홍한나는 디지털 기술을 나의 새로운 자연 즉

‘신新 자연’이라고 명명하고, 신자연으로 포개진 자신의 일상성을 자기변호나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은 채 담담하게 ‘기록log’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연부유록the new nature f-log»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의 형식은 새로운 기교를

보여주거나 시각적 쾌락 혹은 파격적인 화면 구도를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브이로그(vlog)와

같은 자기 고백적 이야기 서술 형식을 중심으로 신자연적 일상성을 자연스럽게 녹이는 전략을

취한다. 그리고 신자연적 일상성은 우리가 디지털 기기와 함께할 때 나타나는 몸짓과 행위들로

시각화된다. <생태로그>와 <엔딩페이스>에서 보여주는 동물들의 몸짓, 표정, 그리고 눈빛은 작위가

없다. 소란하거나 야단스럽게 굴지 않는다.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자각 없이, 아니 자신이 그런

몸짓과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도 거의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서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행동할 뿐이다.

영상 앞에 배치된 무중력 의자에 앉아, 천장에 설치된 팬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현실의 속도와 무게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강박적 시간과 공간의 질서 속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두둥실 부유한다. 이것이 바로 «신자연부유록 the new nature f-log»이 말하는

신자연적 감각이다.

가만히, 고요하게 나를 내버려두게 하는 홍한나식 명상인 ‘부유하기’는 <핑거사피엔스>와

<갈라파고스 땅거북>에서도 계속된다. 투박한 전선으로 느슨하게 엮어 만들어진 거북이의 모습은

무기력하고 무딘 신자연의 또 다른 초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무기력한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생성화육을 반복하는 버섯의 제스쳐와 어우러지며 다시 한번 고요히 부유의 경험으로 이끈다.

홍한나는 여전히 무용한 순환과 오류를 반복하며 부유하는 중이다. 그러나 무용한 순환과 오류는

«신자연부유록the new nature f-log»에서 기교를 가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러나 선명하고 차분하게

기록된 이미지들을 통해 유쾌하게 승화된다. 우리가 자연을 대할 때의 맑고 소박하며 투명한 것으로

부유한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작가: 홍한나

기획: 이채원

글: 이채원

촬영: 백승현

포스터디자인: 홍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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